미-중 기술전쟁 보복에 한국 피해 클듯
전기차·반도체 생산라인 타격 불가피
"탈중국 최소 10년 걸린다"...대책 시급

[포인트데일리 박일한 기자]  중국이 9일 발표한 희토류(稀土類) 수출 통제 강화 조치는 표면적으로는 '우회 수출 방지'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그 이면에는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의 새로운 국면이 숨어있다. 중국은 이번 조치를 통해 희토류 원자재뿐만 아니라 관련 기술까지 통제 대상에 포함시켰다. 단순히 물자의 흐름을 막는 것을 넘어, 서방 국가들이 중국 없이는 희토류 가공 능력 자체를 확보할 수 없도록 만드는 전략적 봉쇄란 평가다. 

주목할 점은 '중국 기술을 사용해 해외에서 생산된 희토류'까지 수출 통제 대상에 포함시킨 대목이다. 이는 미국의 마운틴 패스 광산처럼 자국에서 채굴하더라도, 중국 기술에 의존해 정제·가공한 희토류는 중국의 승인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희토류의 수백 단계의 화학 공정은 30년간 축적된 노하우 없이는 재현이 불가능하다. 중국이 지난 30년간 쌓아온 공정 노하우와 2만5000개에 달하는 희토류 관련 특허(미국의 2.5배)가 이제 무기가 된 것이다.

중국이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희토류 산화물 . 가운데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프라세오디뮴, 세륨, 란타넘(란탄), 네오디뮴, 사마륨, 가돌리늄. 
중국이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희토류 산화물 . 가운데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프라세오디뮴, 세륨, 란타넘(란탄), 네오디뮴, 사마륨, 가돌리늄. 

◇산업의 비타민 희토류= 희토류는 주기율표상 17개 원소를 통칭하는 말로, 스마트폰부터 전기차, 풍력발전기, 첨단 무기까지 현대 산업의 핵심 소재다. '희귀하다'는 이름과 달리 지각에는 풍부하지만, 17개 원소가 화학적으로 매우 유사해 분리·정제가 극도로 어렵다.

네오디뮴과 디스프로슘은 전기차 모터와 풍력발전기의 고성능 영구자석에 필수적이다. 세륨은 반도체 웨이퍼 연마에, 이트륨과 유로퓸은 스마트폰·TV 디스플레이의 형광체로 쓰인다. F-35 전투기 한 대에는 417kg, 이지스함에는 2358kg의 희토류가 들어간다. 소량이지만 대체 불가능한 '산업의 비타민'인 셈이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현재 중국은 전세계 희토류 생산의 70%, 가공·정제의 85-99%, 영구자석 생산의 92%를 장악한다. 고성능 자석에 필수적인 중희토류(디스프로슘, 터븀)는 중국이 99%를 생산하며, 상업 규모의 분리 시설이 중국 외 지역에 단 하나도 없다.

중국의 이런 막강한 지배력은 1980년대 서방 국가들이 희토류 정제 과정의 극심한 환경오염과 방사성 폐기물 처리 비용을 견디지 못한 대가다. 중국은 이 '더러운 산업'을 국가 보조금과 낮은 환경 기준으로 떠안으며 가격을 급격히 낮췄고, 서방 기업들은 경쟁력을 잃고 철수했다. 첨단 기술일 수록 더 많이 필요한 희토류를 사실상 중국이 독점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미-중 기술전쟁의 비대칭 보복= 사실 중국의 이번 조치는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의 결과로 봐야 한다. 2022년 바이든 행정부가 첨단 반도체 대중 수출을 차단하자, 중국은 반도체가 아닌 희토류로 맞받아쳤다. 2025년 1월 트럼프 2기 출범 후 관세 압박이 강화되자, 4월 중국은 7개 희토류에 수출 허가제를 도입했다. 이번 10월 조치는 해외 생산 희토류까지 통제를 확대하며 압박 수위를 한층 높인 것이다.

미국이 중국의 미래(반도체)를 막으면, 중국은 미국의 현재(희토류 공급망)를 흔든다. 반도체에서 열세인 중국이 자신의 독점 분야로 '비대칭 보복'에 나선 셈이다.

◇한국의 88% 공포...전기차부터 반도체까지= 충격은 한국 산업 전반에 직격탄으로 다가온다. 한국은 희토류 금속의 80%, 네오디뮴 영구자석의 88%를 중국에서 수입한다. 현대차와 기아가 추진하는 전기차 전환의 핵심인 고효율 모터는 이 자석 없이 작동하지 않는다. 중국이 수출 허가를 지연하거나 가격을 올리면 생산 라인이 멈출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마찬가지다. 반도체 웨이퍼 연마의 핵심 소재인 '세륨 옥사이드', 디스플레이용 '이트륨'과 '유로퓸'은 대체재가 없다. 중국이 명시한 '14나노 이하 시스템반도체, 256층 이상 메모리반도체용 희토류 개별 심사'는 한국의 첨단 반도체를 정조준한 것이다. 인공지능(AI) 개발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

미국도 심각하다. 희토류 원자재의 70%, 가공된 소재와 자석은 거의 전량을 중국에 의존한다. 미 고부가가치 방위산업엔 절대적으로 중국산 희토류가 필요하다. F-35스텔스 전투기 1대에 희토류 417kg이 필요한 게 대표적이다. 중국이 미국으로 수출 허가를 지연시키거나 거부한다면, 미국 첨단 무기 생산은 말 그대로 "완전히 멈출 수 있다"고 미 의회 보고서는 경고한다. 문제는 미 국방 수요가 전 세계 희토류 시장의 0.1%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미국은 희토류 수입국가로서 가격이나 공급에 별 영향력이 없다. 

◇10년의 싸움...탈중국은 가능한가= 미국과 한국, 호주는 '동맹국 내 공급망' 구축에 수천억 달러를 투입 중이다. 미 국방부는 자국내 유일한 희토류 기업인 'MP 머티리얼즈'에 4억 달러를 직접 투자해 최대 주주가 됐고, 10년간 자석 구매 계약과 함께 핵심 희토류 산화물에 대해 킬로그램당 110달러의 가격 하한선을 보장했다. 이는 변동이 심한 중국 시장 가격의 거의 2배 수준이다.

한국의 포스코인터내셔널은 미국의 리엘리먼트 테크놀로지스와 손잡고 미국 내에 희토류 분리부터 자석 생산까지 수직 계열화된 공장을 짓기로 했다. 세계 최대 비중국 희토류 기업인 호주 라이나스는 칼굴리에 호주 최초의 대규모 정제 시설을 건설 중이다.

이런 탈중국 노력이 실질적인 도움이 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게 사실이다. 신규 프로젝트는 발견부터 생산까지 10~15년이 걸리고, 분리 시설 건설에만 수억 달러와 수년이 필요하다. 전 세계 희토류 재활용률은 1%에 불과하다. 무엇보다 중국이 30년간 쌓은 공정 노하우를 따라잡으려면 최소 10년 이상의 지속적 투자가 필수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트럼프가 관세전쟁을 시작하고, 중국이 희토류 무기화 카드를 꺼낸 상황에서 수출 비중이 큰 한국은 커다란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한 업계 관계자는"미국은 관세로 압박하고 중국은 희토류로 조이는 상황에서 한국 기업들은 앞뒤에서 불이 난 셈"이라며 "K-반도체도 K-배터리도 결국 중국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처지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최소 10년의 인내와 투자가 필요하다"며 "기업은 희토류 저감 기술과 재활용에, 정부는 장기 프로젝트 지원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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