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C 본더 핵심기술 놓고 법정 대리전 본격화
SK하이닉스 805억 계약 체결로 갈등 증폭
HBM4·4E 차세대 시장 주도권 향배 주목

[포인트데일리 이준 기자]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 점유율 90%를 차지한 1위 기업 한미반도체와 추격자 한화세미텍이 TC 본더(열압착장비) 특허를 둘러싼 맞고소 전쟁에 돌입했다. 연 180조원 규모의 글로벌 반도체 장비 시장 판도를 뒤흔들 이번 소송전은 SK하이닉스라는 최대 고객사를 사이에 두고 장기전 양상으로 치달으며 업계 지형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한화세미텍은 최근 한미반도체가 자사의 TC 본더 일부 핵심 부품 특허를 침해했다며 기소한 상황이다. 한화세미택 내외에서 한미반도체의 기술 침해 의혹에 대해 강경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됐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에 한화세미텍이 문제를 삼은 부분은 지난해 12월 한미반도체의 소송과는 다른 부분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과거 한미반도체와 한화세미텍간의 특허 침해 소송 1건과 특허 무효 심판 1건이 겹치면서 긴 대치 국면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화세미텍 관계자는 "한미반도체를 기소한 것이 맞다"면서도 "자세한 사항은 말씀드릴 수 없다"며 말을 아꼈다. 한미반도체는 전날 입장문을 통해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적반하장 소송"이라며 "당사가 한화세미텍의 기술 침해에 대해 정당한 법적 대응을 하자, 이에 맞서 역고소를 제기한 것은 후안무치한 행동"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 같은 한미반도체와 한화세미텍의 관계는 202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한미반도체는 한화정밀기계(한화세미텍의 전신)로 이직한 직원을 상대로 부정경쟁행위금지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2024년 5월 2심에서 해당 직원에게 한화정밀기계에서 한미반도체의 기술 정보를 사용 및 공개하지 못하도록 판결을 내렸다. 한미반도체에 따르면 해당 직원은 한미반도체 TC 본더의 핵심 기술을 담당했다.
다만 이때까지만해도 한미반도체와 한화세미텍의 전면전은 벌어지지 않았다. 반도체 장비 업계 관계자는 "당시 사건은 한미반도체는 한화정밀기계로 이직한 직원에 대한 소송"이라며 "한화정밀기계에서는 그 직원을 공채로 뽑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해당 사건으로 이번과 같은 본격적인 소송전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2024년 한미반도체가 한화정밀기계를 상대로 특허 침해 소를 제기하면서 양상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당시 한미반도체는 자사가 개발한 2개 모듈과 4개 본딩 헤드 방식이 한화정밀기계 장비에 동일하게 적용됐으며, 설계가 유사하다고 보았다.
이어 한화정밀기계가 사명을 한화세미텍으로 바꿨으며, 한미반도체의 단짝이었던 SK하이닉스가 특허 소송이 진행 중인 한화세미텍과의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이에 한미반도체와 SK하이닉스와의 관계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앞서 한미반도체는 2010년대부터 본딩 장비를 만들기 시작해 2017년 SK하이닉스와 함께 TC 본더를 개발하게 된다. 반면 2020년부터 TC 본더 개발에 착수한 한화세미텍은 지난해 SK하이닉스로부터 TC 본더 구매 주문을 받아 품질 평가를 실시했으며, 지난 3월부터 본격적으로 TC 본더 납품 계약을 맺었다. 한화세미텍은 2025년에만 SK하이닉스와 총 세 차례 계약을 맺었으며 공급 규모는 약 805억원에 달한다. 이는 한미반도체와 SK하이닉스 간의 계약과 유사한 수준이다.
한화세미텍은 한미반도체가 소를 제기한 특허에 대해 특허심판원에 무효 심판을 청구했다. 특허 무효 심판은 기존 특허가 법적인 요건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특허 효력을 상실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즉 해당 심판에서 한미반도체의 특허가 무효된다면 한화세미텍을 상대로 제기한 특허 침해 소송은 기각될 수 있다.
이번 소송 결과에 따라 TC 본더를 비롯해 HBM용 본딩 시장의 격변이 찾아올 것으로 보인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에 따르면 올해 글로벌 반도체 제조 장비 시장 규모는 1255억달러(한화 약 180조원) 규모로 전망된다.
한미반도체는 HBM3E(5세대) 시장에서 점유율 90%를 차지한 1위 기업으로, 현재는 한화세미텍이 따라가는 구조다. 만약 TC 본더 특허 소송 결과에 따라 장비 공급에 차질이 생기면 이 같은 생태계가 변할 수도 있다.
현재 한미반도체는 HBM4(6세대) 전용 'TC 본더 4'를 출시하며 고객사 맞이에 나선 상황이다. 최근 컨퍼런스콜에서 해외 고객사의 독점 공급을 자신한 바 있다. 이는 2분기 기준 HBM 시장 점유율 2위(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 집계 기준)인 마이크론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한미반도체는 마이크론에 밀착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한미싱가포르' 현지법인을 세웠다. 한미반도체에 따르면 마이크론은 2027년부터 싱가포르 우드랜즈 지역에서 본격적으로 HBM을 양산할 계획이다.
한화세미텍은 향후 HBM4E(7세대) 시장에서 본격화 될 전망인 하이브리드 본더 'SHB2 Nano'를 내년 초 출시할 계획이다. 이는 2027년 공급을 목표로 한 한미반도체보다 빠른 속도다.
한편 이번 한미반도체와 한화세미텍간의 소송전이 당분간 시장 침체를 야기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판결이 나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고 말했다. 판결이 나기 전 한미반도체와 한화세미텍의 발목을 잡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