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0명 글로벌 CEO·외국 정상 집결···'기술패권 축소판'
리허설 없는 산업외교 무대···글로벌 기업과 빅딜 주목
미·중 정상 잇단 방한···'산업외교' 넘어 '정상외교'로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최고경영자(CEO) 서밋이 열리는 경북 경주 예술의전당 인근에 설치된 조형물. 사진=연합뉴스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최고경영자(CEO) 서밋이 열리는 경북 경주 예술의전당 인근에 설치된 조형물. 사진=연합뉴스

[포인트데일리 윤은식 기자] 경주에 '팀 K-총수'가 뜬다.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의 공식 부대행사인 APEC 최고경영자(CEO) 서밋이 28일 개막하면서 국내 재계를 대표하는 총수들이 일제히 경주로 집결한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정기선 HD현대 회장 등 주요 그룹 수장들이 '산업외교 총출동'에 나선다.

올해 APEC CEO 서밋의 공식 주제는 '브리지, 비지니스, 비욘드'(Bridge, Business, Beyond, 연결과 성장, 그 너머)다. 한국이 아시아·태평양을 잇는 기술·산업 허브로 부상하겠다는 비전을 담고 있다.

APEC CEO 서밋은 단일 기업행사로는 역대 최대규모다. 글로벌 기업인 1700여명과 미국·중국 정상이 한꺼번에 모이는 사상최대 규모다. 정상외교와 기업외교가 동시에 열리는 드문 무대다. 반도체, 인공지능, 모빌리티, 방산, 조선까지 우리나라 주력 산업 수장이 모두 모인 경주는 '기술패권의 축소판'이다. 이번 서밋에서 실질적 투자와 계약으로 이어질 경우 우리 산업 공급망 지형은 한층 업그레이드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8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가운데), 류진 한경협 회장(오른쪽),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왼쪽)가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윌라드 호텔에서 열린 한미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8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가운데), 류진 한경협 회장(오른쪽),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왼쪽)가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윌라드 호텔에서 열린 한미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리허설 없는 '산업외교 실전무대'···AI·반도체·모빌리티 총력전 = 재계는 이번 서밋을 '리허설 없는 산업외교 실전무대'로 본다. 반도체, 인공지능(AI), 모빌리티, 방산, 조선 등 우리 주력 산업의 수장들이 글로벌 파트너들과 직접 교류하며 투자·협력의 물꼬를 트는 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서밋의 결과가 우리 산업의 글로벌 공급망 지형을 재편할 분수령이 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가장 시선을 끄는 건 이재용 회장과 젠슨 황 엔비디아 CEO의 만남이다. 두 사람은 오는 31일 열리는 특별세션 이후 별도 회동을 하고 AI 반도체 공급망과 차세대 그래픽처리장치(GPU) 협력을 논의할 예정이다. 삼성은 차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 생산라인 증설에 나선 상황이고 엔비디아는 AI서버용 칩 수급망 다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이에 이 회장과 젠슨 황 CEO의 만남은 양사의 HBM-패키징-파운드리까지 아우르는 ‘AI 기술동맹’의 초석이 될 것으로 업계는 바라보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서밋 의장으로 행사를 주도한다. 최 회장은 개막행사 '퓨처테크포럼 AI'에서 기조연설을 통해 아시아∙태평양 국가의 지속 가능한 AI 생태계 마련을 위한 전략을 제안할 것으로 알려졌다. 엔비디아에 HBM3E를 공급하는 핵심 파트너인 SK하이닉스는 이번 서밋 기간 차세대 AI 반도체 수급 협력을 심화하는 방안을 논의할 것으로 전해졌다.

정의선 회장은 이번 행사를 통상외교 무대로 활용한다. 트럼프 행정부의 자동차 관세 인상 움직임이 재점화되면서 한미 통상협상이 계속되는 가운데 정 회장은 정부 협상단과 공조하며 관세율을 15% 수준으로 낮추기 위한 논의에 힘을 보탤 예정이다. 정 회장은 29일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 주재 만찬에 참석할 예정이다. 이 자리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참석 가능성도 거론되면서, 한·미 통상 협력 논의의 향방에 관심이 쏠린다.

한화와 HD현대는 각각 방산과 조선 산업의 미래 기술을 전면에 내세웠다.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은 방산·우주·에너지 분야에서 글로벌 기업인들과 연쇄 회동을 이어간다. 전날 한화는 국립경주박물관에서 ‘한화 퓨처테크 포럼: 방위산업’을 열고 AI, 위성, 로보틱스 기술을 통합한 차세대 'Defense Tech Alliance' 비전을 공개했다. 정기선 HD현대 회장도 전날 '퓨처테크 포럼: 조선' 기조연설자로 나서 "AI는 조선 산업의 스마트 혁신을 견인할 엔진"이라며 AI 자율운항, 탈탄소 솔루션 등 미래 조선기술 청사진을 제시했다.

 2017년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방중 환영행사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트럼프 대통령이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017년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방중 환영행사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트럼프 대통령이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미·중 정상 방한···산업외교에서 정상외교로 = 이번 APEC은 산업협력의 장이자 외교 무대이기도 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9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30일부터 2박 3일 일정으로 국빈 자격으로 한국을 방문한다. 한·미·중 정상외교가 이어지는 수퍼위크가 본격화할 전망이다. 트럼프는 2019년 6월 이후 6년여 만에, 시진핑은 2014년 이후 11년 만에 한국을 찾는다. 서울이 아닌 지방 도시에서 미·중 정상이 연이어 국빈으로 방문하는 사례는 사실상 처음이다.

또 우리나라와 중남미 국가 가운데 처음으로 자유무역협정(FTA)를 체결한 칠레 가브리엘 보리치 대통령도 유일하게 APEC에 참석한다. 러시아는 국제형사재판소(ICC) 체포영장이 발부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대신 알렉세이 오베르추크 국제문제 부총리가 대표단을 이끌고 한국을 찾는다. '하나의 중국' 원칙으로 총통의 직접 참석이 제한된 대만에서는 관례대로 린신이 총통 선임고문이 대표단을 이끈다.

APEC 비회원국인 아랍에미리트(UAE)의 칼리드 아부다비 왕세자와 IMF의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총재도 본회의 1세션에 초청됐다. 두 사람은 '더욱 연결되고 복원력 있는 세계를 향하여'를 주제로 열리는 세션에서 특별 게스트로 발언에 나설 계획이다.

이재용, 최태원, 정의선 회장 등 재계 주요 인사들은 이재명 대통령 주재 정상회의 만찬과 시진핑 주석 초청 국빈만찬에 참석해 '기업외교'와 '정상외교' 가교 역할을 맡는다. 특히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정책과 시진핑 정부의 공급망 안정화 구상이 맞물리면서 만찬이 산업정책 실무조율의 실질 무대로 평가된다. 

정부는 경주 전역을 특별경계구역으로 지정하고경찰·특공대 등 약 1만8000명의 경비인력을 배치했다. 1700명 이상이 참석하는 대형 국제행사인데다 숙박·교통 등 지역 인프라 부담이 큰 만큼 경주는 현재 G20급 경호·안전 체제를 가동 중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이번 APEC은 우리의 글로벌 위상을 가늠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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