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은행 부동산 공급 자금→첨단, 벤처산업 전환 추진
정부 금융정책에 은행 부담 연간 조단위 관측…"ATM기 아냐"

[포인트데일리 조혜승 기자]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한국 경제와 자본시장이 구조적 대전환기에 진입했다. 정부는 국력 세계 5위와 국민소득 5만달러, 코스피 5000포인트를 달성하기 위한 핵심 과제를 야심차게 제시했지만, 한국을 둘러싼 대내외 환경은 녹록지 않다. 글로벌 경기침체와 미국 정부가 촉발한 관세 전쟁 등 대내외 악재로 국내 경제 성장률은 2030년대 1% 수준까지 하락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이를 극복하고 한국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핵심은 제도 개편과 규제 혁신이다. 포인트데일리는 창간 9주년을 맞아 [대전환기 한국경제, 혁신에서 길을 찾자]를 통해 한국 경제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 <편집자주>
◇정부, 은행 부동산 공급 자금→첨단, 벤처산업 전환 추진
이재명 정부가 금융권 혁신을 본격 추진하고 있다. '생산적, 포용적 금융'을 청사진으로 제시하며 예금과 대출의 차이인 '예대마진'으로 이익을 거두는 은행의 관행을 바꿔 산업 성장과 사회 안전망의 발판으로 삼겠다는 구상을 구체화했다.
3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정기획위원회는 지난달 13일 국민보고대회를 열고 '국정운영 5개년 계획(안)'을 발표했다. 국정위는 '국민이 주인인 나라, 함께 행복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비전 아래 3대 국정 원칙, 4대 국정 목표, 123개 국정과제를 제시했다.
5대 국정목표는 △국민이 하나 되는 정치 △세계를 이끄는 혁신경제 △모두가 잘사는 균형성장 △기본이 튼튼한 사회△ 국익 중심의 외교안보 등이다.
국정과제 주요 내용을 금융권에 해당 사항으로 좁히면 혁신경제와 균형 성장이 연관성이 있다. 정책 추진 키워드는 생산적 금융과 포용금융으로 요약된다.
먼저 혁신경제는 바이오헬스 등 미래전략산업을 신성장동력으로 육성하고 반도체, 이차전지 등 주력 산업 혁신을 통해 수출 경쟁력을 높이는 방안이다.
여기서 주요 은행들이 AI 등 첨단산업과 벤처기업에 저금리 대출, 투자를 통해 산업 생태계를 조성하는 역할을 맡는다.
생산적 금융은 부동산 중심에 공급된 자금을 첨단산업, 벤처기업 등에 투자를 집중해 국가의 미래 성장과 산업 경쟁력을 높이는 정책이다. 정부는 지난 6월 6·27 가계대출 관리 대책을 내고 부동산 대출 규제를 강화했다.
균형성장 차원에선 100조원 규모 국민성장펀드를 조성한다. 이 펀드로 조성한 자금을 AI, 반도체, 이차전지 등 첨단산업과 벤처기업에 투자를 확대하고 국가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함이다.
펀드는 산업은행이 50조원 기금 출자와 민간자금으로 마련된다. 첨단전략산업기금을 규정한 '한국산업은행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넘었고 올해 연말 기금이 출범할 계획이다.
정부는 금융사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기업대출 시 위험 가중치 100%를 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는 또 지난달 29일 국무회의서 이러한 내용을 담은 '2026년 예산안'을 통과시키며 미래 성장동력 확충의 의지를 드러냈다. 정부는 첨단전략산업 기금과 민간자금을 활용해 금융지원, 혁신창업, 기반 확보 등 3곳에 예산을 투입할 계획이다.

◇정부 핵심 과제, '포용적 금융' …은행 자금 투입 전망
이재명 정부는 생산적 금융과 함께 포용적 금융에 방점을 두고 있다. 자영업자, 청년층, 저소득 가구 등 취약계층을 비롯해 국민의 금융부담 저감과 자산 증식을 내세운다.
정부는 코로나19부터 계엄 사태까지 어려움을 겪는 자영업자, 소상공인을 위한 지원을 대폭 늘린다.
장기 연체 중소상공인 등 채무 탕감 프로그램 추진, 장기 분할 상환 프로그램 도입, 중저신용자 의무대출 비중 상향 조정, 햇살론 등 서민금융 공급 확대, 소상공인 자영업자 대상 대환 대출 활성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장기 소액 연체채권 소각 등 배드뱅크(부실채권전담은행)도 설치한다. 일정한 요건을 갖춘 소상공인이라면 채권 소각 대상이 포함된다. 단순한 채무 조정이 아닌 채무 탕감 수준의 지원이 마련될 전망이다.
◇정부 금융정책에 은행 부담 연간 조단위 관측..."ATM기 아냐"
금융권은 이재명 정부의 생산적, 포용적 금융 개혁안의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산업, 벤처 분야의 높은 실패 가능성이 부실로 이어질 수 있으며 손실 위험, 채무 감면 등으로 인한 수익성 악화를 우려하고 있다.
배드뱅크 출연, 국민성장펀드 참여, 교육세 인상 등 정부의 금융·산업 정책과 세제개편으로 인해 은행들의 부담은 연간 조 단위가 넘어설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의 손실을 보전할 제도적 장치나 인센티브가 없는 상황에서 생산적 금융을 강제하는 것은 위험하다"며 "결국 정부는 성과를 챙기고 손실은 은행이 떠안는 구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권에선 정부가 금융을 통해 산업 동력을 바꾸겠다고 강조하고 있으나 은행을 현금인출기(ATM) 또는 사회 안전망으로만 본다면 민간 은행의 경영 자율성을 훼손하고 정부 보조금을 내는 성격의 금융에 종속될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금융산업은 자율성과 시장 원리에 기반해야 하는데 정부가 정부 개혁안에 따라 성장산업, 취약계층 지원을 이유로 금융사에 개입하면 '관치금융'으로 흐를 수 있다는 의견이다.
전문가들은 과거 중화학 산업 육성 당시 은행이 돈을 버는 주체가 아닌 산업에 자금을 지원하는 통로로 인식됐으나 현재 경제 규모가 커지고 정부가 자원 배분에 관여하기가 어려워지는 환경에선 정부가 은행을 다르게 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즉 정부는 은행이 주주가치 극대화를 목표로 경영되도록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며 은행 역시 비용관리를 철저히 하고 탐욕스럽지 않다는 인식을 국민에게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양원근 전 하나금융 사외이사는 "금융의 발전 없이 여타 산업이 발전하기 어렵고 금융과 산업의 불균형 발전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며 "금융은 시장원리, 주주가치 제고 원칙에 따라 경영이 이뤄져야 하고 더 이상 정부의 정책수단으로 인식되지 않아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 은행들처럼 수 많은 고통 받는 채무자를 양산하고 은행 임원들이 고임금 잔치를 한다면 정부의 개입을 불러오는 결과를 자초할 수 있다"며 "은행이 지속가능한 성장 모델을 만들어내고 사회적 합의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