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인트데일리 김혜미 기자] 민주노총이 “노동자의 건강권 보호”를 내세우며 0시부터 오전 5시까지 새벽배송을 전면 금지하자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 여파는 단순한 근로조건 논의에 그치지 않는다. 새벽배송은 이미 국내 유통 혁신의 상징이자, 소비 생활의 필수 인프라로 자리 잡았다. 이 시점에서의 일률적인 금지 논의는 국내 산업 경쟁력을 무너뜨리고, 역으로 중국계 플랫폼의 반사이익만 키워주는 ‘자해적 규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새벽배송은 소비자의 편의를 넘어, 한국 유통·물류 시스템의 경쟁력을 상징한다. 쿠팡이 ‘로켓배송’을 내세워 2014년 익일배송 시대를 연 이후, 마켓컬리·SSG닷컴·롯데온 등 대형 유통사들이 수천억 원을 투자하며 전국 단위 콜드체인망을 구축했다. 올해 새벽배송 시장 규모는 약 15조 원, 종사자만 2만 명에 이른다. 단순한 서비스가 아니라, 수만 명의 생계와 직결된 산업 생태계인 셈이다.
그러나 민주노총 택배노조가 제시한 ‘새벽 0~5시 배송 전면 금지안’은 이러한 현실을 외면한다. 쿠팡파트너스연합회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기사 10명 중 9명은 “새벽배송 금지에 반대한다”고 답했다. “오히려 새벽에 일하는 것이 교통체증과 고객 간섭이 적어 효율적”이라는 이유에서다. 쿠팡친구노조 역시 “정작 현장 노동자들은 찬성하지 않는 규제를 민주노총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노동계 내부에서도 의견은 엇갈린다. 한국노총은 “새벽배송은 노동자의 생계와 직결된 만큼, 선택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실제로 주요 유통기업들은 심야 노동 부담을 줄이기 위해 자동화 설비를 확충하고, 심야 인력 규모를 감축하는 등 개선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단순히 ‘시간대 금지’로 접근할 문제가 아니라, 건강검진 강화·휴게공간 확충·탄력근무제 도입 같은 현실적 대안이 필요한 이유다.
문제는 이런 논의가 이어지는 사이, 중국계 전자상거래 플랫폼이 한국 시장에 빠르게 침투하고 있다는 점이다. 알리익스프레스는 최근 ‘알리프레시(Alifresh)’라는 신선식품 유통 채널을 선보이며 일부 지역에서 익일배송 테스트를 시작했다. 테무(Temu) 또한 국내 물류 거점 확보에 나서며 ‘새벽배송’ 시범 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양사 모두 한국 내에서 별도의 규제나 근로시간 제한 없이 사실상 자유롭게 영업을 펼치고 있다.
국내 기업은 규제의 족쇄에 묶이고, 중국 플랫폼은 규제의 사각지대에서 시장을 잠식하는 아이러니다. 알리바바 계열의 자본은 이미 한국 유통기업과 합작 형태로 물류망을 구축하고 있으며, 결제·데이터·광고까지 디지털 경제의 핵심 인프라로 손을 뻗고 있다. 정부가 새벽배송을 단순한 ‘노동문제’로만 접근한다면, 머지않아 유통·물류·데이터 산업의 주도권이 중국 자본으로 넘어가는 것은 시간문제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새벽배송은 한국 유통의 경쟁력 그 자체”라며 “이 시점에서 금지를 논의하는 것은 스스로 산업 기반을 무너뜨리는 일”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알리·테무는 ‘속도’와 ‘가격’을 무기로 소비자를 빠르게 흡수하고 있다. 국내 기업이 규제에 발목 잡힌 사이, 해외 플랫폼이 국내 인프라를 활용해 시장을 잠식한다면, 그 피해는 결국 국내 일자리와 소비자에게 돌아갈 것이다.
새벽배송을 둘러싼 논의의 초점은 ‘금지냐 유지냐’가 아니다. 어떻게 하면 ‘안전하고 지속 가능한 산업 구조’로 발전시킬 수 있을지에 있다. 심야노동의 부작용을 줄이되, 산업 경쟁력은 지켜내야 한다.
지금 한국은 기로에 서 있다. ‘노동 보호’를 명분으로 산업을 옥죄는 규제의 길을 갈 것인가, 아니면 ‘혁신과 균형’을 통해 세계적 유통 경쟁력을 지켜낼 것인가. 새벽배송의 본질은 단순한 편의 서비스가 아니다. 그것은 한국 유통의 기술력, 효율성, 그리고 경쟁력의 상징이다. 그 상징을 스스로 내던지는 순간, 그 자리를 알리와 테무가 차지하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