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벤처 투자 규모 늘지만
투자 받기는 녹록치 않아
국내 VC 투자 위축에
해외 자본 의존하는 모양새

[포인트데일리 이준 기자] 국내에서 나고 자란 인공지능(AI) 스타트업이 해외 자본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 드러났다. 일정 매출을 확보한 AI 기업의 경우 민관 투자가 쉽지 않아 스케일업을 위해 해외 벤처캐피탈(VC)을 두드리는 상황이다.
한 AI 스타트업 관계자는 "해외 VC와 자주 미팅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AI 3대 강국'으로 나아가기 위해 AI·연구개발(R&D) 투자가 확대됐지만, 정작 성장 단계 기업들은 "초기 창업 위주에 치우쳐 있다"고 질책한다.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의 발전을 도모하는 중소벤처기업부(이하 중기부)의 2026년도 예산안에 따르면 중기부는 내년 창업 및 벤처 4대강국 도약을 위한 예산안에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4조3886억원을 투입한다. 이는 올해(3조5585억원) 대비 23.3% 증가했으며 전체 예산안(16조8449억원)의 약 26%에 달한다. 이 중 AI 및 딥테크에는 절반을 배정할 예정이다.
중기부는 아기유니콘(기업가치 1000억원 미만)과 예비유니콘(1000억원 이상 1조원 미만), 글로벌 유니콘(1조원 이상)으로 나눠 맞춤 지원을 실행하고 있다. 이 같은 사업은 높은 경쟁률을 보이며 예비 유니콘의 경우 올해에만 5.3:1의 박터지는 경쟁을 보였다. 평균 기업가치는 1134억원에 불과해 일정 규모 성장한 기업은 스케일업 지원을 받기 쉽지 않다는 한계가 드러난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AI 서비스는 글로벌 빅테크가 무료로 기능을 제공하는 경우도 많아 수익구조가 취약하다"며 "국내 VC가 리스크를 꺼리면서 기업들이 해외 자본을 찾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이에 일부 AI 스타트업은 정부의 품을 떠나 민간 VC의 손을 벌려야하는 상황이다. 차세대 기술의 경우 초기 자본을 비롯해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한 사업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국내 VC 시장이 위축됐다는 점이다. 중기부에 따르면 벤처투자 금액은 2021년 15조9371억원에 달했으나 2023년 10조9133억원으로 추락하고, 2024년(11조9457억원) 반등에도 여전히 2021년과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실제 해외 VC 유치 사례는 종종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으로 뤼튼 테크놀로지스는 올해 1080억원 규모로 시리즈B 투자 유치를 완료했다. 리드 투자자는 미국계 VC인 굿워터캐피탈이다. 뤼튼 테크놀로지스는 AI 앱 중 월간 활성화 이용자수(MAU) 기준 SKT의 에이닷과 2, 3위를 다투는 AI 서비스 '뤼튼'을 운영 중이다.
에이아이비즈는 미국 실리콘밸리의 접점을 넓히기 위해 2023년 미국에 법인을 설립했다. 에이아이비즈는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의 장영실상을 수상한 AI 기반 반도체 제조 공정 진단 솔루션 '더치보이'를 보유하고 있다. AI 검색엔진으로 주목받는 라이너도 미국 현지 법인을 세워 글로벌 VC 네트워크를 확장 중이다. 구글의 '구글 포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에 선정되며 해외 시장 인지도를 높이고 있다.
최근 정부는 '제3의 벤처 붐'을 목표로 창업자 양성에 힘을 쏟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창업 지원도 중요하지만, 일정 매출을 확보한 스타트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스케일업 지원을 병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창업자의 양적 확대와 더불어 성장 기업의 질적 성장을 위한 실질적인 정책 마련도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