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장 · 산업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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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인트데일리 최영운 기자] # “슬픔이 파도처럼 덮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물에 잉크가 퍼지듯이 서서히 물드는 사람도 있는 거야.”(박해일)

“당신 만날 방법이 오로지 이것밖에 없는데 어떡해,

날 사랑한다고 말하는 순간 당신의 사랑이 끝났고,

당신의 사랑이 끝나는 순간 내 사랑이 시작됐죠.”(탕웨이)

“내가 그렇게 만만합니까…”(박해일)

“내가 그렇게 나쁩니까…”(탕웨이)

2022년 6월 29일 개봉한 박찬욱 감독, 박해일‧탕웨이 주연의 '헤어질 결심' 중 남녀가 ‘사랑의 코드’를 찾아가는 대사의 일부분이다. 형사와 피의자로 만난 두 사람의 미묘한 스며듦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까지 서로에 대한 팽팽한 관심의 긴장도를 높여주며, 내 청춘시절 청보리밭의 아릿한 추억마저 깨워 버렸다. ‘내가 그렇게 나쁜 놈이냐?’ ‘그럼, 내가 그렇게 만만해!’

 # 올 설은 살해와 방화, 음주운전 등 사건사고가 이어졌지만 그래도 가족간 불상사는 여느 명절보다 줄 며 대체로 평온한 연휴 분위기를 유지했다.

학업·취업·결혼에 시달리는 고달픈 청춘들이 고향을 찾는 일을 의도적으로 외면해 ‘덕담의 AZ 잔소리’를 피했던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하지만 결혼을 하면 명절 후유증은 사라질까. 미혼의 성인 못지않게 명절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젊은 부부들도 증가하며, ‘명절이 지나면 이혼한다’는 의미의 ‘명절 이혼’이란 유행어도 생겨났다. 통계청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설 직후인 2~3월과 추석 직후인 10~11월 이혼 건수가 그 전달보다 평균 10% 정도 늘었다. 실제  설 연휴 기간 이혼건수를 살펴보면 코로나19 첫 유행시기인 2020년을 빼면 2019년의 경우 설이 포함된 2월 이혼건수는 9945건에서 3월엔 1만753건으로, 2021년에도 설 연휴 직전에는 1만5000건이던 이혼 건수가 설 직후 1만6800건으로 증가했다. 남성은 양가 체류 시간에 불만을, 여성은 차례 준비 과정 중 남편을 포함한 시댁의 무한희생 요구에 혈압이 폭발한 것이다. 

우리나라 이혼율은 그렇지 않아도 이미 OECD 1위를 당당히 차지하고 있는데 1년에 두 번 찾아오는 명절날이 되레 이혼을 부추기고 가족을 해체하는 ‘역설의 명절’로 변했다니, 가족 공동체를 무엇보다 중시할 조상님도 이쯤되면 ‘차라리 앞으로는 설·추석은 그냥 너희끼리 잘 먹고 잘 살아라’라고 저승에서 명절 귀성을 말릴 것 같다. 

# 최근 재출간한 ‘여성시대에는 남자가 화장을 한다’(최재천 著) 사회과학서가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진화생물학과 동물행동학 등을 전공한 최재천 교수는 찰스 다윈의 성(性)선택 이론을 바탕으로 ‘여성의 우위’를 주장하며 헌법재판소까지 찾아가  호주제는 생물학적 관점에서 엉터리라는 의견을 발표해 ‘헌법불합치’ 결정에 이어 ‘호주제 폐지’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여성의 지위 복원(?)에 앞장서며 여성학자보다 더 여성학자같은 행동에 그냥 열불이 나 미쳐버릴 것 같은 일부 남성들에게도 최 교수는 ‘현실의 죽비’를 내리치며 따뜻한 위로의 말도 잊지 않았다. 남성(수컷)들이여! 이제라도 변해버린 세상 물정을 알고 차라리 실속이라도 챙기시라고. 

“자연계에서는 수컷이 예쁘고 아름답고 아양 떤다. 안 예쁜 암컷이 예쁜 수컷 중 하나를 고르는 거다. 유독 호모 사피엔스만 그러지 않는 건 농경 때문이다. 근육의 힘으로 농사짓고 곳간을 지은 뒤 곳간 열쇠를 손에 쥐고 여성을 지배한 거다. 산업 고도화로 두뇌를 많이 쓰게 되면 이건 무너질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 40~50대 남성 가장들 얼마나 힘들게 사나. 죽어라 일만 하고, 옛날처럼 특권이 있는 것도 아니고, 누리는 것도 없는데 늘 기득권자라 욕먹고. 그러니 점점 더 확실해지는 여성시대를 쌍수 들고 환영하자. 이제 아내와 딸더러 나가서 돈 벌어오라 하고 남성도 인생을 즐기자.”

# 4·10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우리 사회에 다시 ‘이대남’과 ‘개딸’이 정치판으로 소환되고 있다. 20대 남자의 줄임말인 ‘이대남’은 이미 지난 대선 당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에 의해 선거마케팅에 성공해 쏠쏠하게 득표를 챙겼고, 2021년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는 오세훈 후보에게 70% 이상의 압도적 몰표를 주기도 했다.

이에 반해 ‘개혁의 딸(개딸)’은 친이재명 성향을 띠는 20~30대 젊은 여성을 의미하는 말로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가 ‘이대남’이라 불리는 젊은 남성층을 공략하는 선거전을 벌이자, 이에 맞서 민주당 이재명 후보측이 여성들의 권익을 대변하는 정책을 내세워 ‘개딸’의 지지를 얻으며 한국 사회는 젠더 갈등의 소용돌이로 빠져들기도 했다.

최근엔 이준석 공동대표는 2030년부터 군 복무를 마친 여성에 한해 경찰·해양경찰·소방·교정 공무원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공약을, 금태섭 전 의원은 ‘남녀 병역 평등’을 성별 갈등의 해결책으로 제안하며 여성 징병제를 제시했지만 두 사람 다 기본적인 병역현실을 무시한 ‘표 벌이 구호정책’에 가깝다. 또 기득권의 양대 정당은 어떠한가? 국민의힘은 이번 총선에 여성 113명이 공천을 신청해 여성의 비율이 전체의 13.34%에 불과하며, 더불어민주당 역시 215명(15.4%)에 그쳐 여성 후보 30% 약속에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4년마다 돌아오는 총선에서도 여성은 또 철저히 아웃사이더인 셈이다.

예전 페미니즘 인기 서적 ‘82년생 김지영’의 대항마로 남성 역차별을 강조한 소설 제작 프로젝트 ‘90년생 김지훈’이 한 때 젠더 이슈의 중심으로 떠올랐었다. 이후에도 젠더 갈등은 선거철이나 취업, 사회 이슈 등 청춘 남녀를 비교할 때 등장하는 단골 메뉴가 됐지만 갈등치유를 향한 사회적 노력은 아직도 ‘정치적’에 머물러 있다. 

‘남녀 관계의 바이블’로 불리는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1992년)의 저자 존 그레이 박사는 남녀를 화성인과 금성인으로 빗대며 남녀의 근본적 차이를 인정하고 서로간 소통하는 법을 제시했다면, 그 후의 21세기판 ‘화성 남자와 금성 여자를 넘어서’(2018년)에서는 남녀의 ‘역할 나누는 관계’를 넘어서 ‘마음을 나누는 관계’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국 사회는 유독 갈등의 치유보다는 재생산에 여념이 없다. 이미 남북갈등은 차치하고, 지역갈등과 빈부갈등, 세대갈등에 이어 남녀갈등이라니…. 

이제, 그러나 또 다른 새로운 봄이 오고 있다. ‘4월의 시인’ 신동엽이 외쳤듯, 모오든 갈등을 부추기는 여러 ‘허망한’ 껍데기들은 가고, 아사달과 아사녀가 봄바람 안으며 청보리밭을 밟듯 우리 사회의 모든 묵은 갈등을 거름삼아 푸릇한 희망의 싹들이 틔어 오르는 사회를 나직이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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