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 수요 폭증에도...'슈퍼 을(乙)' 국내 반도체 장비 기업은 '아직'
'다변화' 기본으로 하는 국내 반도체 기업들 장비 업계 "내년에는 다르지 않을까" 기대해 주춤하고 있는 한미반도체·한화세미텍 등
[포인트데일리 이준 기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고대역폭메모리(HBM)를 비롯한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급증하면서 양사는 회사의 목표를 캐파(생산 능력) 확대에 방점을 찍었다. 이에 국내 반도체 장비 업체에서 '슈퍼 을(乙)'이 나오는 것이 아니냐는 기대감이 쏠렸으나, 업계에서는 신중한 상황이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반도체 업체들은 특정 기업에 의존해 독점적으로 공급받기보다는 다양한 협력사를 확보하는 전략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업계는 공급망을 다변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 기업 ASML과 같이 슈퍼 을 위치에 설 국내 기업은 아직이라는 말도 나온다. 다른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ASML과 같은 기업은 대체가 안된다"면서 "(국내에서는) 특정 기업에 갑을 관계가 있지는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ASML은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생산하고 있는 기업이다. 현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모두 ASML의 노광장비를 도입하며 반도체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ASML의 하이 NA EUV는 기존 EUV보다 해상도가 크게 향상된 장비로, 2나노미터(nm, 1nm=10억분의 1m) 이하 시스템반도체 및 10나노 이하 메모리 반도체 생산에 필수인 것으로 여겨진다. 업계에 따르면 장비 가격은 한 대당 5000억원 이상이며, 연간 공급량이 극히 제한된다. 현재 글로벌 시장에서 HBM의 성능을 좌지우지하는 베이스 다이(로직 다이)는 4나노미터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 장비 업체 관계자 또한 "설비 투자를 발표했다고 해서 장비 업계에 변화가 많이 있느냐고 하기엔 아직 어렵다"며 "내년이 돼야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까 예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와 같은 메모리 공급사들이 내년에 본격적으로 설비 투자를 시작하면서 국내 장비 업체에게 주문이 들어올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다는 것이 해당 관계자의 설명이다.
현재 삼성은 향후 5년간 국내에 450조원을 투자하면서 반도체 부문에는 평택 캠퍼스의 5공장(P5) 공사에 착수할 계획이다. 앞서 삼성은 반도체 부진으로 인해 P5 공사 시점을 조정한 바 있다. 설비 투자에 막대한 비용이 투입되는 만큼 고객사 확보 전 설비를 미리 확충하는건 지양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 16일 당초 128조원으로 계획됐던 국내 투자 비용을 용산 팹에만 600조원가량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또 SK하이닉스는 내년 1월 준공을 목표로 청주 M15X 팹을 짓고 있다. 최근에는 클린룸을 조기 오픈하고 장비 반입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가운데 한미반도체가 지난 17일 SK하이닉스로부터 약 16억원 규모의 HBM 제조용 장비를 공급한다고 공시하면서 장비 업계에 대한 기대감이 쏠렸다. 한미반도체는 HBM의 핵심 장비로 꼽히는 TC(열 압착) 본더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 한미반도체에 따르면 당사는 HBM 생산용 TC 본더 전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이번 한미반도체의 공시로 인해 SK하이닉스와 한미반도체 관계가 개선된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됐다. 공시가 이뤄진 지난 17일 한미반도체의 종가는 전 거래일 대비 5.33% 상승한 13만2300원으로 마감했다. 같은날 한미반도체는 고객사 마이크론으로부터 '탑 서플라이어'(핵심 공급사)로 인정받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다만 한미반도체가 공급한 제품은 자사의 주력 제품인 TC 본더는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반도체 업계 한 관계자는 "한미반도체가 SK하이닉스에 납품하는 장비는 TC 본더가 아니"라며 "핵심 공정에 쓰이는 장비도 아니"라고 강조했다. 공시 역시 의무 공시가 아닌 '자율 공시'였다. 본지는 한미반도체의 입장을 듣고자 수 차례 통화를 시도했으나 닿지 않았다.
한편 한미반도체의 3분기 실적은 전 분기 대비 주춤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한미반도체의 지난 연결 기준 2분기 영업이익은 863억원으로 집계되면서 전년동기 대비 약 55.8% 성장했다. 다만 3분기에는 678억원으로 지난해에 비해 31.7% 하락했다. 전분기에 비해선 21.4% 떨어졌다. 국내 경쟁사인 한화세미텍 역시 녹록치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화세미텍의 지분 100%를 소유하고 있는 한화비전의 분기 보고서를 살펴보면 올해 3분기 한화세미텍의 분기순손익은 약 544억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