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전이 생존길”… 식품업계, 쿠팡 의존 끊고 ‘독자 물류’로 승부
"상품 잘 만드는 것으로 부족하고 고객에 빠르게 도달해야” 자사몰·자체 배송 20곳 중 15곳…6곳은 자체 배송망 확보 24년 온라인 식품 시장 규모 47조원, 물류의 ‘빅뱅’ 본격화 농심·남양·오뚜기·서울우유 등은 자사몰만 운영 배송망 아직
[포인트데일리 김혜미 기자] 온라인 식품 시장에서 빠른 배송 경쟁이 제조사 중심으로 옮겨가고 있다. 그동안 쿠팡·컬리 등이 시장을 주도해왔으나, 최근 식품 제조사들이 자사몰과 자체 물류망을 구축하며 독립을 선언하고 있다. 쿠팡에 납품해 수수료를 내는 구조 대신, 직접 고객 데이터를 확보하고 마진을 높이기 위한 전략이다.
10일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2024년 온라인 식품 시장은 47조원 규모로, 전체 온라인 쇼핑 중 18.3%를 차지하며 전년 동기 대비 15% 성장했다. 제조사들은 “상품을 잘 만드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고객에게 빠르게 도달해야 살아남는다”고 판단하고 있다.
쿠팡 프리미엄 프레시, 컬리 샛별배송, 오아시스 새벽배송 등 고품질 신선식품 배송 서비스가 온라인 식품시장을 주도하며, 이에 따라 식품업계는 자체 온라인몰과 새벽·당일·익일배송 등 다양한 배송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 제조사가 곧 ‘배송 사업자’… 물류 독립 러시
유통업계에 따르면 주요 식품업체 20곳중 15곳(75%)이 자사몰 또는 배송 체계를 갖추고 있었고, 이 가운데 6곳(CJ제일제당, 풀무원, 동원, 롯데웰푸드, 아워홈, hy)은 자체 배송망까지 구축하고 있다.
CJ제일제당은 ‘CJ더마켓’을 통해 익일 도착 보장 서비스(오네배송) 를 제공하며 전국 단위 배송망을 구축했다. 풀무원은 더 나아가 새벽배송·택배배송·일일배송·매장배송 등 4종 배송 체계를 동시에 운영하는 업계 유일한 구조를 갖췄다. 롯데웰푸드는 ‘내일받기 서비스’를 통해 자정 전 주문 시 다음날 배송하는 시스템을 도입했고, 아워홈은 당일·익일 배송 서비스 도입 이후 매출이 66% 증가했다. 동원은 여러 브랜드 상품을 한 박스로 합쳐 보내는 합배송 방식으로 배송비 부담을 낮추고 있다.
반면 농심·남양유업·오뚜기·서울우유 등 8개사는 자사몰만 운영할 뿐 별도의 배송망을 갖추지 못한 상태다. 업계에서는 “쿠팡에 납품할 경우 단가 협상에서 주도권을 갖기 어렵다”며, 자체 물류를 확보해야 판매 마진을 높이고 고객 데이터를 직접 확보해 플랫폼에 의존하지 않는 ‘이커머스 독립’이 가능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SSG닷컴과 11번가 등 플랫폼 기업들이 적자를 지속하는 가운데, 쿠팡조차 높은 매출에도 영업이익률 1.7%에 묶여 있다. 플랫폼이 배송비와 물류비를 떠안는 구조에서 수익성 개선이 어렵다는 점이 드러난 것이다. 식품업체들은 이를 보고 “굳이 플랫폼의 적자 구조를 반복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 새벽배송 규제 논의... 그러나 경제적 파급효과는 막대
한편 전국택배노조가 자정~새벽 5시 배송 금지를 요구하면서 새벽배송 제한 논의가 진행 중이지만, 한국로지스틱스학회는 배송 중단 시 연간 54조3000억원의 경제 손실이 발생한다고 분석했다. 이 가운데 이커머스 매출 감소가 33조2000억원, 소상공인 매출 감소가 18조3000억원에 달한다. 새벽배송은 이미 산업 생태계의 핵심 축이 된 셈이다.
유통업계 관계자 “온라인 시장의 승패는 누가 좋은 상품을 갖고 있느냐가 아니라, 누가 ‘배송’을 장악하느냐에 달렸다”며 “과거 쿠팡이 빠른 배송으로 게임의 규칙을 바꿨다면, 이제는 식품업계가 자체 물류로 시장의 권력을 다시 쓰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