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전망이 경쟁력"···기업·정부, 에너지 혈관 잡기 총력

LS·대한전선, HVDC 글로벌 수주 경쟁 한화·SK, 전력망 밸류체인 강화에 속도 네이버·카카오, 빅테크 전력 조달 다변화 政, '차세대 전력망 추진단'···에너지 안보 계통요금차등제·민간참여확대···제도 개선

2025-09-26     윤은식 기자

[포인트데일리 윤은식 기자] 재생에너지 확대와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 증가가 맞물리면서 '송전망'이 기업들의 신성장 동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글로벌 인공지능(AI)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전력 수급 문제가 전 세계적 이슈로 떠오른 상황에서 우리 기업들은 차세대 송전망 기술인 초고압직류송전(HVDC) 시장 선점을 위한 경쟁에 나서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2024년 에너지 수급 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총발전량은 595.6 테라와트시(TWh)로 전년 대비 1.3% 늘었다. 이 중 신재생에너지 발전량은 63.2TWh로 전년 대비 0.8%p 늘어 전체 10.6%를 차지했다. 태양광 설비 확대와 발전량 증가가 미친 영향으로 풀이된다.

AI·클라우드 산업 확장으로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도 급증하고 있다. 한국IDC는 국내 데이터센터 전력수요는 올해 4461메가와트(MW)에서 2028년 6175MW로 늘며 연평균 11%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유럽으로 수출되는 대한전선 초고압케이블. 대한전선 제공. 

◇'송전망 병목' 기업들의 신성장 동력으로 전환 = 재생에너지 확대와 데이터센터 수요 급증으로 '송전망 병목 현상'이 기회로 떠오르면서 국내 주요 기업들이 앞다퉈 전력망 투자에 뛰어 들고 있다. 

LS그룹은 해저케이블·포설선·변환설비까지 아우르는 공급망을 구축하며 HVDC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특히 국내 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제주에서 전남까지 HVDC 해저케이블 시공 경험을 보유 중이다. LS전선은 강원 동해 해저케이블 공장에 5동 준공을 통해 HVDC 해저케이블 생산능력을 기존 대비 4배 이상 늘렸고 제주–전남 HVDC 해저케이블 시공 경험을 기반으로 해외 시장 확대를 노리고 있다.

대한전선은 충남 당진 아산국가산단 내에 4972억원을 투자해 해저케이블 제2공장을 착공했다. 부지 규모는 약 21만5000㎡(축구장 30개 규모)로 기존 1공장 인근에 들어선다. 640킬로볼트(kV) HVDC와 400kV HVAC케이블 생산이 가능하도록 설비가 갖춰진다. 2027년 말 완공 시 생산능력은 기존 대비 최대 약 5배 수준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에너지 대기업들도 속도를 높이고 있다. 지난해 말 SK이노베이션과 합병한 SK이노베이션 E&S는 미국 텍사스에서 200MW급 에너지저장장치(ESS)를 설치해 상업 운전을 시작했고, 자회사 KCE는 코네티컷에서 총 400MW 규모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한화큐셀(Qcells)은 태양광 모듈 제조를 넘어 종합 전력 사업으로 외연을 넓히고 있다. 2022년 전력판매사업자로 등록한 뒤 직접 전력구매계약(PPA) 사업을 본격화해KT&G와는 20년 동안 매년 최대 8.8GWh를, 세아베스틸과는 20년 동안 매년 1만6425MWh를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여기에 발전량 예측과 전력중개 등 분산형 전원·운영 솔루션 사업으로도 확장하며 '발전·저장·판매(전력중개)'에 이르는 밸류체인을 고도화하고 있다.

정보통신(ICT) 기업들도 전력 조달 다변화에 나서고 있다. 네이버는 PPA 방식을 통해 사옥 전력 일부를 재생에너지로 사용 중이며, 카카오 역시 자체 설비와 다양한 방식으로 재생에너지 도입을 확대하고 있다.

반면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주도하는 경기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송전선로 건설 지연과 막대한 인프라 비용 부담이 겹치면서 안정적 전력 확보가 최대 변수로 꼽힌다. 전체 전력 수요가 16기가와트(GW) 안팎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일각에선 "송전망이 제때 구축되지 않으면 팹 가동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나온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내부 사진. 해당 기사와 직접적인 관계 없음. 사진=연합뉴스.

◇전력난 돌파 위해 정부, 민관 협력 체계 가동 = 민간의 적극적인 투자와 별개로, 정부도 송전망 병목과 국가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제도와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8월 산업통상자원부는 '차세대 전력망 추진단'을 출범시키고 민관 협력 체계를 가동했다. 추진단은 AI 기반 수요 예측과 공급 조정 기능을 갖춘 '한국형 차세대 전력망' 구축을 핵심과제로 삼았다. 또 재생에너지와 에너지저장장치(ESS), 마이크로그리드 연계 기술을 중심으로 지역 단위 분산형 계통 도입도 추진 중이다.

아울러 정부는 전력망 정책 기능을 전담할 '전력망정책관' 신설을 포함한 조직 개편안을 마련해 국회 논의를 앞두고 있다. 이는 송전망 구축 지연 문제를 중앙에서 직접 관리하겠다는 정부 의지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책 수단도 구체화되고 있다. 정부는 26일부터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 시행해 전력망 투자 확대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세부 제도로는  △송전망 혼잡 지역에 더 높은 요금을 부과하는 '계통 이용 요금 차등제' △여러 발전소가 함께 송전망을 이용하거나 배전망에 조건부 접속하는 '공동 접속·배전 확대' △민간 기업이 초기 단계부터 송전선로 계획·투자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 개선안' 등이 있다.

정부는 전력망 투자 확대를 위해 민간 참여 방안도 검토 중이다. 그간 '전기사업법'상 송·배전이 한국전력 독점 영역으로 묶여 있었다. 그러나 재생에너지 확산과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 급증으로 송전망 확충이 시급해지고, 한국전력의 재정 여력도 한계에 달하면서 민간 참여 필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송전망 계획 단계부터 민간이 투자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을 추진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재생에너지와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 급증은 송전망 투자에 대한 새로운 기회를 열고 있다"며 "특히 ESS(에너지저장장치)와 연계한 송전망 확충은 안정적 전력 수급의 핵심 해법이 될 수 있고, 민관이 힘을 합쳐 효율적 제도와 인프라를 마련한다면 병목 현상이 곧 신성장 동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