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희토류를 끊고, 러시아가 가스를 막았다... 무너지는 세계경제

세계 무역질서 대전환④석유에서 희토류까지···자원은 무기다 사라지는 자유무역, 자원의 무기화와 블록경제 확산 반도체·배터리·철강···95% 수입 의존 재활용·국산화로 돌파구 찾는 기업들 "민관 협력·국제 공조 없이는 위기 돌파 어려워"

2025-09-17     윤은식 기자

1930년대 대공황 이후 90여 년 만에 미국 평균 관세율이 20%를 넘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구축된 자유무역 질서가 근본부터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제 무역전쟁은 단순한 관세 분쟁이 아닙니다. 기술 표준부터 탄소국경세, 핵심 광물 공급망, 데이터 주권, 금융 결제망까지 모든 영역이 지정학적 무기로 활용되는 '총체적 지경학(Geoeconomics) 시대'가 열렸습니다. 세계 10위 무역대국 한국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효율성과 안보 사이에서, 시장과 동맹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고 있습니다. 본지는 창간 기획 '자유무역의 종언-쪼개진 세상에서 한국의 생존전략' 10회 연재를 통해 변화하는 글로벌 무역 질서를 진단하고, 한국의 생존전략을 모색합니다.

[포인트데일리 윤은식 기자] 지난 4월 17일 미국 백악관 홈페이지에 올라온 팩트시트는 충격적이었다. "중국이 최대 245%의 관세를 물게 됐다"는 내용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발표한 관세 폭탄은 전 세계 무역 질서를 뒤흔들었다.

같은 시기 러시아는 폴란드와 불가리아에 천연가스 공급을 끊었다. 중국은 희토류 '수출 허가제'를 도입해 전략적 통제를 강화했다.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은 더 굳건히 막혀 있고, 중동 산유국들은 감산 합의로 유가를 끌어올리고 있다.

자원의 무기화는 이제 일상적인 위협이 됐다. 자원을 쥔 자가 세계 경제의 생사여탈권을 좌우하는 시대, 한국은 그 최전선에서 생존 전략을 찾고 있다.

자원의 무기화는 미래가 아닌 현재진행형이다. AI로 제작한 이미지.

◇신자유주의 질서의 붕괴= 지난 수십 년간 세계 경제를 지배했던 신자유주의 질서가 무너지고 있다. 2020년 팬데믹과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효율성' 중심의 글로벌 공급망이 얼마나 취약한지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이제 각국은 비용보다 '회복탄력성(Resilience)'과 '신뢰성(Reliability)'을 우선하며 공급망을 다시 짜고 있다. 미국은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와 '핵심광물안보파트너십(MSP)'을 통해 중국을 뺀 경제 블록을 만들고 있고, 유럽연합은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라는 '그린 보호주의'로 자국 산업을 보호하고 있다.

국제관계 전문가들은 과거 영토 확장에 초점을 둔 '지정학(Geopolitics)'을 넘어, 경제적 수단으로 패권을 추구하는 '지경학(Geo-economics)' 시대가 왔다고 설명한다. 

콴 호왕 브엉 베트남 페니카대(Phenikaa University) 교수는 '기후·환경 위기의 무기화: 위험, 현실, 그리고 결과'(Weaponization of climate and environment crises: Risks, realities, and consequences) 논문에서 "자원의 무기화는 단순한 경제적 압박을 넘어 국제 질서의 균형을 바꾸는 새로운 권력 매커니즘"이라고 분석했다.

◇확산되고 있는 자원 무기화= 러시아의 천연가스 무기화는 자원이 얼마나 강력한 정치적 무기가 될 수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 후 러시아가 루블화 결제를 요구하자, 불가리아의 키릴 페트코프 총리는 이를 거부했다. 러시아는 즉시 가스 공급을 끊었고, 이로 인한 정세 불안과 인플레이션 악화로 페트코프 총리는 결국 2022년 6월 의회 불신임으로 물러나야 했다. 자원 무기화가 단순한 경제적 압박을 넘어 한 나라의 정치적 안정성까지 위협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다.

이 과정에서 유럽의 에너지 공급 구조가 완전히 바뀌었다. 2024년과 2025년 유럽 LNG 수입의 절반 이상(약 50-54%)을 미국산으로 바꿨으며, 미국은 이를 '민주주의 에너지'로 포장하며 15개국이 참여하는 동맹 결속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세계의 빵 바구니'로 불리는 우크라이나의 곡물 무기화는 현재도 진행 중이다. 2022년 러시아 침공으로 흑해 항로가 막히자 국제 곡물 가격이 급등했고, 아프리카와 중동의 저소득 국가들은 심각한 식량난에 처했다. 2023년 7월 러시아가 흑해 곡물 수출 협정을 일방적으로 파기한 후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곡물 무기화는 단순한 무역 분쟁을 넘어 인류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문제로 번졌으며, 현재도 수백만 명이 식량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중국의 희토류 무기화는 가장 교묘하고 전략적이다. 세계 희토류 채굴량의 70%, 정제량의 90%를 장악한 중국은 2024년 '수출 허가제'를 도입해 WTO 규정을 피하면서도 특정 대상에게만 압박을 가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2025년 중국의 희토류 수출 통제로 한국 수입이 76% 급락했으며, 미국 자동차혁신협회는 생산 중단 가능성을 경고했다.

흥미롭게도 중국은 한국 기업들(포스코퓨처엠,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에게는 선별적으로 수출을 허가했다. 하지만 이는 단순한 호의가 아니라, 중국산 희토류를 사용한 제품이 미국 군수업체에 수출될 경우 제재하겠다는 경고성 압박이 들어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는 한국을 미-중 갈등의 한복판에 세우며, 미국의 기술 봉쇄망에서 떼어내려는 중국의 전략적 의도를 보여준다.

우리 기업들은 자원 공급망 다변화를 위해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사진=픽사베이

◇사면초가에 놓인 한국의 자원 의존 경제= 한국은 자원 무기화 시대에 가장 취약한 국가 중 하나다. 광물자원의 95%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미국의 관세 폭탄, 중국의 희토류 통제, 러시아의 에너지 차단이 동시에 몰아치고 있다. 구체적인 현황을 보면, 4월 대미 자동차 수출이 19.6% 급감했고, 5월 총수출은 14.6% 줄었다. 중국의 희토류 통제로는 2025년 수입이 76% 급락해 반도체와 배터리 산업이 직격탄을 맞았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정제·가공 과정의 중국 의존도다. 리튬 정제의 60%, 코발트 정제의 70% 이상을 중국이 맡고 있어, 원자재를 다른 곳에서 가져와도 중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구조다. 에너지 분야에서도 중동 원유 의존도가 62%에 달하고, 러시아발 LNG 공급 차질 우려가 남아있다.

하지만 한국 기업들은 위기를 기회로 바꾸고 있다. 특히 2019년 일본 수출 규제 위기에서 얻은 교훈이 현재의 대응 전략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일본 의존도 90% 이상이던 고순도 불화수소를 솔브레인과 램테크놀러지가 국산화에 성공했으며, 현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생산 라인에 안정적으로 공급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수입선 다변화를 넘어선 '기술 주권' 확보의 성공 사례다.

정부도 과거 실패를 교훈으로 삼아 새로운 접근법을 택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 시절 한국광물자원공사의 5조원 투자 중 5,000억원만 회수하는 참담한 실패를 겪었지만, 현재는 공급망 3법을 제정해 법적 기반을 완성하고 연간 500억원 규모의 '공급망 안정화 기금'으로 민간 주도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있다. 한국광해광업공단이 지원한 민관 협력 사업의 성공률은 9.8%로, 민간 단독 사업(4.2%)보다 2배 이상 높은 성과를 보이고 있다.

◇기술 주권 확보가 열쇠다= 자원의 무기화와 공급망 블록화는 더 이상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새로운 국제 질서의 상수가 됐다. 한국이 이 위기를 극복하려면 단순한 공급선 다변화를 넘어 핵심 기술의 '내재화'와 '자립화'가 필수다.

재활용 기술의 고도화도 중요한 돌파구다. SK하이닉스는 2024년 세계 최초로 네온 재활용 기술을 상용화했고, 정부는 2030년까지 전략광물 재활용률 20%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는 중국 의존도를 줄이는 동시에 환경친화적 순환경제를 만드는 일석이조 효과를 낸다.

에너지 분야에서도 다원화 전략이 빨라지고 있다.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중을 30%로 늘리고, 2035년 에너지 자립도 50%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로 해상풍력 단지를 조성하고 수소경제 생태계를 구축하며, 소형모듈원자로(SMR) 상용화에 나서고 있다.

국내 자원 업계 관계자는"단기적 대책을 넘어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며, 공급망 다변화, 기술 자립, 민관 협력, 국제 공조를 아우르는 전략적이고 체계적인 정책을 통해 미래 자원 위기에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 배터리 기업의 한 임원은 "자원의 무기화 속에서 한국이 직면한 최대 위기는 특정 자원 의존에 따른 공급망 불안정"이나 "동시에 배터리·재생에너지 등에서 축적한 기술력을 통해 자원 안보 위기가 새로운 성장 기회로 전환할 수 있다"고 말했다.